[앤트워프] 왕립미술관 그리고 앤트워프 중앙역
벨기에 도시 중에 두 번째 규모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것이 오히려 안타까운,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앤트워프를 8월 초에 한번 더 다녀왔다. 벨기에 브뤼셀에도 왕립미술관이 있지만, 앤트워프에도 아름다운 왕립미술관이 있다. 루벤스, 브루게 같은 플랑드르 거장들의 주요 활동 공간이었던 앤트워프답게, 이 거장들의 그림도 상당히 많다고 해서, 이번엔 꼭 미술관도 들러야지 했다.

그리고 건축적인 의미만으로도 방문 가치가 충분한 앤트워프 중앙역도 다시 가고, 근처에 구경할만한 것들도 들러보는 게 목적이었다.
이번에 앤트워프를 가보고 느낀 것은, 역시 유럽 도시는 여름이란 것?
벨기에의 여름은 참 짧지만, 대신에 찬란하기도 하다. 물론, 10월 가을 단풍이 노랑노랑할 때 방문한 것도 좋았고 추운 겨울 으스스할 때 방문한 것도 나름 정취가 있었지만, 8월 초에 방문한 앤트워프는 완전히 딴 동네 같다.
햇볕이 쨍하면서도 시원한 바람이 불고 그늘에만 들어가면 서늘한 데다, 하늘은 높고 쾌적하고, 고전적인 붉은 벽돌과 석재로 된 아기자기한 건물들의 색감이 예쁘게 조화를 이룬 도심. 예전 건물 구조를 유지하고 하얀 페인트로 외관을 다시 칠하고 모던한 느낌으로 리모델링한 건물들에는 아페테리프며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무려 6월까지 비와 바람이 많고 추웠던 날씨를 뒤로 하고 뒤늦게 찾아온 벨기에의 여름이란.
벨기에든 네덜란드든 룩셈부르크든 꼭, 7-8월에 오라고 하고 싶다.
벨기에 여행의 꽃, 앤트워프
예상대로 왕립미술관은 외관부터 으리으리하다. 북유럽 스러운 차분함도 있고, 대영박물관 같은 아우라와 웅장함도 갖춘 곳이다. 규모가 아주 크진 않지만, 세련되기 그지없는 주변 환경이며, 미술관 바로 앞 물을 사용한 설치미술품까지, 미술관이 갖추어야 할 미적인 요소를 모두 갖춘 곳이다.
입장료는 성인 20유로. 넓은 중앙홀 양옆으로 설계된 나무 계단을 밝고 올라서면 높은 천장, 그리고 벽에 루벤스의 이름이 커다랗게 음각으로 새겨져 있어, 이 플랑드르 거장이 벨기에 미술에서 갖는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2층은 대부분 플랑드르 화가들, 그러니까 반다이크나 브루게 등 17-18세기에 네덜란드와 벨기에 지역에서 활약한 화가들의 그림이 가득하다.
성화도 많지만, 주로 그 당시 사람들의 풍속과 인물, 주변 환경, 정물, 동물 같은 다양한 소재를 그린 그림들이다.
그림의 규모가 크면 확실히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데,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라든가, 나일강의 풍경 같은, 유럽 외의 지역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이 구현된 그림들도 너무 좋았고, 그 당시 사람들의 풍속을 그린 앤트워프 광장을 배경으로 한 그림도 좋았다. 바벨탑과 그 주변의 사람들을 아주 원경까지 자세히 그린 그림이며, 어떤 공작부인을 그린 인물화도 좋았다.

너무 사실적이면서도, 주제의식이 담긴 그림들이 많다. 성화도 꽤 있었는데, 유럽에서 성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여기서 트램을 타고 5 정거장 정도 가면 앤트워프 중앙역. 언제 들러도 멋있는 내부지만, 오늘도 오니 사람들이 바글바글. 저마다 천장이며 계단참의 아름다운 구조를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중앙역 천장뿐 아니라 역사 전체가 꽤 멋있는 구조고, 여름휴가철이라 그런지 이용객도 상당히 많았다. 광장을 나오면 바로 앞으로 차이나타운이 이어진다.
차이나타운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Chocolate Nation이라는 벨기에 초콜릿 박물관도 있다. 아이들이 있다면 꼭 가보기를 추천한다. 4세부터는 14.5유로를 내야 하긴 하지만 카카오빈 열매부터 시작해서 초콜릿이 가공되는 전 과정을 재미있는 영상과 소리로 경험할 수 있고, 마지막에는 10가지가 넘는 벨기에 초콜릿을 액체 상태로 휘젓는 상자에 작은 스푼을 대고 시식할 수도 있다.
시식 코너가 끝나면 초콜릿 샵으로 이어지는데, 도저히 사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무드가 된다. 포장도 예쁘고, 초콜릿의 역사와 제조 과정을 보아서 그런지 다양한 제품들 중에 몇 개는 그래도 사가지고 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이래저래 뿌듯하고, 볼 것도 많았던 앤트워프의 여름.
도시가 꽤 크기 때문에, 해변 쪽의 마스 뮤지엄이나 항구를 보느냐, 구도심의 성모마리아 성당과 앤트워프 그랑플라스를 위주로 볼 거냐, 아니면 중앙역과 쇼핑거리, 앤트워프 동물원 등을 중심으로 볼 거냐를 정해야 할 만큼 볼 것이 많다.
개인적으로는 만 하루 또는 1박은 할애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브뤼셀보다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는 벨기에 제2의 도시 앤트워프. 네덜란드 국경 거의 바로 아래에 있으니 암스테르담을 거쳐 로테르담 등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앤트워프는 꼭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