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고즈넉한 감성, 경주 여행
경주 한번 안 가본 사람이 있을까.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것이 10년 전. 2025년의 경주는 어떤 얼굴일까.
올해는 APEC 정상회의도 열린다고 해서 도시가 여기저기 새 단장을 하고, 호텔들도 리노베이션을 진행 중이고, 무엇인가 변화되고 있는 느낌도 많이 있지만 그래도 경주의 인상을 하나로 말하자면 신라 천년고도의 고즈넉함이 물씬 풍기는 정감 있는 옛날 도시로 다가온다.
KTX를 타고 이동하려면 경주역에 내리는데, 경주역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주시에 있지만 지도를 보면 경주시내 중심부에서 남서쪽으로 20km 이상 떨어져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시내까지 거의 1시간, 자동차로도 20분 이상 잡아야 하니, 다소 먼 편.
봄 경주 여행
경주는 도시를 따라 남북으로 흐르는 형산강 줄기의 동쪽에 구시가와 보문단지가 모두 위치해 있다. 시외버스터미널이 도심으로 들어가기엔 훨씬 가깝고 편리하고, 우리가 잘 아는 황리단길도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더 가깝다.

터미널 근처 형산강의 지류를 따라 카페와 식당들이 모어있는 지역. 황리단길도 이 동네지만 더 넓게는 강변을 따라 상권이 만들어져 있고 그중 일부가 황리단길로 개발된 것 같다.
10여 년 전, 커피맛은 물론 주인분이 온갖 빈티지 커피잔을 모아서 전시해 둔 걸 구경하느라 행복했던 '슈만과 클라라'도 아직 있다.
관광지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도 구시가에서 비교적 가깝다. 동궁과 월지는 낮보다는 밤에 가야 하고, 심지어 밤 10시까지 오픈하고 있길래 웬일인가 했는데, 실제로도 야경이 예쁘고, 주변 소나무숲이 호수에 비친 그림자가 인상적이었다.

20분 정도 걸리는 산책로도 만들어 놓아서 3월의 다소 쌀쌀한 밤이었는데도 관광객들이 많았다. 주말에 가니, 입구 근처에 불을 밝힌 야시장도 자그맣게 서 있어서 간식도 사 먹고 아이들이 장난감도 사서 놀고 북적거리는 모습이다.
보문단지는 여기서 동쪽으로 좀 더 떨어진 보문 호수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데, 현대 호텔을 리모델링한 라한 호텔 등 리조트들도 보문 단지를 따라서 늘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오래전에 개발된 관광단지라, 리모델링에 들어가지 않은 시설은 다소 낡은 모습이기는 하다.
모텔급이지만 사실 비즈니스호텔급으로 깔끔하게 오픈한 곳도 은근히 있어서, 가성비 숙소를 찾는다면 이런 곳도 검색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시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라한 호텔이 20만 원대, 위치 등에 있어 가장 좋은 힐튼 호텔은 30만 원이 넘는다.
경주의 성수기는 오히려 한여름보다는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이라고 한다. 나 역시도 경주를 찾았던 건 봄이 제일 많았다. 황리단길이든, 첨성대 주변이든, 봄꽃이 필 때가 아련하게 아름답다.
개인적으로는 보문 호수를 따라 걷는 산책길도 좋아한다. 다만, 이곳은 관광단지라 성수기가 아닐 때는 식당이며 편의시설들이 한산하고 때로는 너무 조용해서 흥이 안나는 면도 있을 것 같다.
힐튼 호텔 바로 뒤편으로 드라이브스루 스타벅스가 있다. 8시에 문을 열어, 아침에는 베이글이며 모닝커피를 마시러 오는 관광객들이 줄을 서있기도 하고, 위치가 좋아서 늘 장사가 잘 되는 모양새다. 바로 건너편에는 화백컨벤션센터라는 현대적인 회의장 건물도 있다.
저녁이 되면 이 지역은 리조트 내부가 아니면 조용해지고, 황리단길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경주에서 먹었던 한정식중 특히 인상 깊었던 곳이 이조한정식. 수삼을 달콤한 시럽에 재워 함께 낸 요리도 좋고, 동충하초를 참기름에 찍어먹게 나오기도 했고, 갈비찜도,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한 돼지고기 조림도 맛있다. 또 아담한 한옥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안뜰 쪽은 사진을 찍기도 좋았다. 곧 위치를 바로 옆 새로운 건물로 옮긴다고 하는데, 그러면 신발을 벗지 않고 들어가도 된다고 하니, 다음에도 또 와볼 예정.

마지막날은 보문 호수가 바로 앞에 있는 Aden이라는 카페에 들렀다. 이때는 마침 온도가 15도까지 올라가서 완전히 봄날의 나들이 분위기였는데, 아덴은 2층 건물에, 넓고 호수가 바로 앞에 펼쳐져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이스 바닐라 라테 맛있었고, 1층에 다양한 케이크류도 맛있으니 한번 들러보시길.
벚꽃 시즌이 오기 전 방문이라 일교차도 크고 아침저녁으로는 꽤 추웠지만, 그래서인지 교통 체증도 전혀 없고 한적하게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오다가다 만난 경주 사람들은 묵직하게 정이 많다.
전체적으로 지방이 인구가 줄고 있음을 실감하면서도, 너무 북적이지 않기 때문에 고즈넉하고 푸근함이 살아있기도 하다. 발길 닿는 대로 여기저기, 하루 이틀 머물다 가기 좋은, 너무 많이 바뀌지 않아 좋은 경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