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 다녀온 지는 20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니스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때만 해도 프랑스 파리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밤새 가서 새벽에 니스에 떨어지는 무리한 일정이 가능했던 20대였다.
숙소도 예약하지 않고 니스 현지에서 구하면 되겠지 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계획으로 갔었더랬다.
그 시절에 내가 대책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오늘날처럼 여행 앱으로 완벽한 계획을 짜놓고 가기보다는 현지에서 되는 대로 숙소를 구하는 게 통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너무 오래된 일이라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기억이 나는 건 니스역 근처에서 우연히 마주친 붉은 머리의 라트비아 아주머니.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국인 대학원생 둘이서 3일 정도는 머물 예정이나 아직 숙소를 구하지 못한 상태란 걸 듣고 자기가 요양차 여름마다 와 있던 2층 집의 2층 방을 내어 주기로 한 것. 내 기억에 3일 동안 숙박을 하고 내라고 한 돈은 단돈 100유로였다.
그때 100유로는 학생에게는 큰돈이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여름철 니스에 층 하나를 온전히 내어 주고 3일이나 재워 주는데 100유로를 받는다는 건 공짜나 다름없었다. 뜻밖의 행운의 신이 나서 아주머니를 따라 약간 언덕진 곳에 있는 그 집을 함께 찾아 들어왔다. 2층 방의 창에서는 니스 바다가 그대로 내려다 보였다.
하얀색으로 칠해진 깔끔한 방에는 두 개의 침대가 놓여 있어서 친구와 내가 자기에 딱 좋았다.
지금도 창틀에 걸터앉아 해변을 바탕으로 찍은 그 장면이 눈에 선하다.
리가에서 온 아주머니는 혼자 그곳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내심 반갑기도 하셨는지 저녁에는 팬에 버터를 두르고 생쌀을 익힌 버터밥도 해 주시고 고기도 구워 주셨다. 너무 맛있는 저녁을 먹고 아주머니랑 수다도 떨고 이메일도 교환하며 친해진 우리는 니스에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했다.
니스에서 가장 유명한 영국인의 산책로는 바다로 나가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의 아름다운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프로머나드를 정처 없이 걷고, 자갈밭인 니스 해변에서 한참을 앉아 있기도 했다.
첫 지중해 여행지, 니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도 호피무늬 삼각팬티 수영복을 입고 다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기도 했고 밤이 되면 약간 관광지스러워지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정취에 한없이 바닷가를 휘젓고 다녔던 기억.
아마 나의 지중해 첫 여행지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며 그 버터밥을 해 주시던 북유럽 아주머니는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니스에 대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아름다운 기억에 무엇인가 더 더해지는 것이 싫어서 그 뒤로도 프랑스나 지중해 여행을 갈 때 니스는 더 이상 가지 않게 되었다.

니스 공항에 내려 동쪽에 있는 망통을 거쳐 이탈리아 산레모로 간 적도 있고, 니스보다 좀 더 서쪽에 있는 앙티브나 깐느에도, 재작년 여름엔 그보다 좀 더 서쪽 해안의 생트로페에도 갔지만 한사코 니스는 피하고 있다.
실제로 강렬하고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던 여행지에 수년이 흘러 다시가 보게 되면, 그 최신의 기억으로 첫 번째 기억이 많이 덮이는 경험을 했었더랬다.
어차피 지중해는 그 마을 각각의 특색이 있고 그 마을만이 가진 미술관이며 박물관에 자연의 모습까지 볼 게 많은 터. 굳이 니스를 한 번 더 가서 나의 20대 아름답던 그 바닷가 마을의 기억을 덮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프랑스나 이태리 남부 여행을 계획할 때마다 문득 그 아주머니가 해주던 버터밥을 기억한다. 물론, 수백 유로를 주고 잤던 어떤 호텔보다도 더 아름답고 가슴 설레었던 그 하얀 2층 집의 작은 방도 아마 평생 잊을 수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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