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오스트리아

[비엔나] 카페의 도시 비엔나

Alice1911 2022. 8. 28.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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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닥거리는 마차들 사이로, 오페라 극장 뒷편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걷는다.
도시 한복판 호프부르크 궁전, 오페라 극장, 이 모여 있는 곳. 구도심을 가장 잘 둘러볼수 있는 방법중 하나가 마차로 한바퀴 도는 것이다. '피아커(Fiaker)'라고 불리는 두마리 말이 끄는 마차로 20분 정도 간단하게 볼 수 있는 코스도 있고, 도심을 좀더 길게 도는 40분짜리 코스도 있다.
 
잠깐 고민했지만 20분은 너무 짧을 것같아, 80유로에  4명이 탈수있는 긴 코스를 택했다. 마차 투어는 유럽 왠만한 도시는 다 있지만, 비엔나에선 정말 한번 타볼만한것이, 비엔나 구시가가 그만큼 잘 보전되어 있고 아름다워서 고풍스로운 건물들 사이로 달리다보면 정말 내가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의 오스트리아에 들어와있는 것 같다. 


한바퀴 돌고 다시 출발점이었던 호프부르크 궁전 앞에 내려 걸어서 도심을 구경한다.

데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

 

비엔나에서 비엔나 카페들을 들르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비엔나로 오는 오스트리아 항공 기내식 조차, 비엔나의 카페 문화를, 하나의 현상, 비엔나의 문화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특징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가슴이 설렌다. 서울이야 워낙 힙한 카페가 수도없이 생겨나고 경쟁하고 있어서 카페의 수준이 엄청 높지만, 비엔나가 다른 점은 바로 그 카페 문화의 원조라는 점. 
워낙 역사가 깊다. 우선 데멜(Demel). 1786년 Ludwig Dehne 이 디저트샵으로 열어서 1856년 현재의 이름은 데멜이 되었을때는 오스트리아 프란츠 조셉부터 당시 귀족들 모두에게 유명한 부르주아들의 핫스폿이 되었다고 한다. 데멜의 자손들이 대대로 물려받아 예전 레시피 그대로 디저트들을 만들어오고 있다는데, 1786년부터, 라는 타원형 검은 간판에 쓰여있어, 외부에서부터 고풍스러움이 넘쳐난다. 
우드로 된 나무 테이블은 검은색으로 반들반들 빛난다. 디저트샵으로 시작한 곳이니, 워낙 케이크들도 유명하지만, 카이저슈마흔(Kaiserschmarrn)이라고 불리는, 비엔나에만 있는 디저트는 꼭 먹어봐야한다. 모양을 보면 조각낸 팬케익이다. 짙은 버터향이 풍기는 조각낸 팬케익에 크랜베리, 건포도, 사과소스를 부어서 함께 먹는 디저트. 뭐 맛있을수 없는 조합이다. 그리고 커피도 한잔. 
카이저슈마흔
사실 비엔나에서 커피를 마신다는건, 커피 맛 자체보다는 이런 달콤한 디저트에 곁들여져 단 맛을 한 템포 눌러주는 분위기메이커랄까. 물론, 분명히 비엔나 커피라고 불리는 멜란지(Melange)는 특별한 맛이 있다. 
카푸치노처럼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과 우유를 부어주는 버전도 있지만, 생크림를 얹고 우유거품을 얹어주는 버전도 있다. 멜란지라고 할 때도 두가지 가능성이 다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곳에선 비엔나 커피가 그냥 카푸치노 맛인 곳도 있고, 크림이 얹혀져서 진하고 고소한 맛을 내는 곳도 있다.  

데멜과 비교하면 자허 카페(Cafe Sacher)는 한결 밝은 분위기다. 붉은 벽지에 골드톤이 장식된 벽, 오래된 하얀 대리석 바닥, 짙은 오크우드 테이블과 의자 등이 화사하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돕는다. 커피나 그 유명하다는 자허토르테도 먹지만, 일요일 아침이니 브런치 메뉴를 시키기로 했다. 브런치 종류도 심플한 것도 있고, 거한 버전도 있는데, 우리는  ‘자허’를 골랐다(Breakfast Sacher Style)/
빵, 오렌지주스, 홀드래디시 소스와 연어, 다양한 햄과 치즈, 스크램블드 에그가 나오는 풍성한 메뉴. 왠만한 여자들이면 자허 브랙퍼스트를 먹고나면 엄청 배가 부를 양이다. 1832년 Franz Sacher 라는 제빵사가 까다로운 궁정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발명했다는 자허 토르테의 성공이 오늘날의 자허 호텔, 까페, 레스토랑으로 이어져오고 있다는데, 사실 지금 자허 토르테를 먹어보면, 아주 잘 만들어진 초콜렛 케이크에 살구쨈을 한겹 더 씌운 맛 정도로 느껴진다. 
하지만, 최고급 디저트들에 익숙해진 요즘 사람들이 아닌, 초콜렛도 디저트도 특권층 위주로 소비되었던 200년 전이라면, 이 완성도 높은 맛과 담음새는 사람들에게 신세계였을 것도 같다. 코로나의 막판이라 아직은 외국인들이 적어 보였지만, 원래는 줄을 서서 한시간이고 기다려야 하는 곳이라고 한다. 
오전 11시경 도착했을때는 은근 한산했는데, 두시간여를 보내고 나오니, 역시 줄이 생겼다. 
이번엔 가보지 못했지만 1876년부터 운영한 카페 센트럴(Central)도 높은 천장과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낄수있는 곳이다. 몇년전 출장길에 가봐서 사진도 없지만, 데멜이나 자허가 좀더 아기자기하고 작은 규모라면 센트랄은 공간 전체가 하나로 오픈되어 있고 창이 많아서 좀더 환하고 개방적인 느낌이니, 취향대로 골라서 가보면 좋을 것 같다. 
두 카페를 들른 다음날은 30분 정도 교외에 있는 쇤브룬 궁전을 봤고, 마지막날 아침,  비엔나를 떠나기 아쉬운마음에 국립오페라 극장 근처의 가장 번화한 거리를 한바퀴 더 둘러보고 오스트리아식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쌀쌀한 3월의 아침, 화사한 페이스트리 유리 케이스가 눈길을 끌어 고민없이 들어간 곳은 Kurkonditorei Oberlaa. 
다른 지점도 있는것같았지만 우리는 비엔나 가장 중심 호프부르그 궁전 근처 Mariahilfer Strasse 위에 있는 지점으로 왔다. 비엔나식 브런치의 특징은 브뢰첸 빵에 크림을 발라서 치즈, 상추, 토마도같은 다른 재료들과 함꼐 먹는다는건데, 크림을 넣기 때문에 원재료들을 감싸는 풍성한 맛이 훨씬 강하게 느껴진다. 크림을 넣었으니 느끼할 거라고 상상했는데, 진심으로 마성의 조합이다.
물론 이곳은 제과점이라, 브런치 메뉴 외에도 각종 케이크와 타르트, 초콜렛, 마카롱 등 다양한 제과를 함께 판다. 브런치를 먹고, 아쉬움에 타르트도 한조각 골라서 먹는다. 커피를 시키면 귀여운 빨간 포장의 초콜렛을 한조각씩 줘서 그것도 좋다.
마지막 날 아침, 우리딸이 이것저것 만지고 유리그릇, 커피잔이라도 깨뜨릴까 정신이 없긴 해도, 이 단정하고 화사한 카페에서 마지막 브런치를 즐기는 기분은 참 좋다. 로컬인 듯 보이는 나이든 부부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 음악소리도 거의들리지 않는 조용한 분위기지만, 소근소근 시끄럽지 않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바이브가 유쾌한 곳.
다시 온다고 해도 이곳에서 비엔나 커피와 브뢰첸빵을 시켜놓고 한시간은 미적거리고 싶은 바로 그런 곳이다. 
화려한듯하지만 은근 건실하고 단정한 맛이 있는 비엔나. 도시에 있어야 할 박물관, 미술관, 음악당, 오페라 극장, 연극극장, 공원, 궁전 등등이 다 있으면서도 현대적인 가게와 카페, 식당들이 잘 어우러져있다. 그래서, 너무 번잡한게 싫지만 도시스러움은 느끼고픈 사람들에게는 정말 최고의 관광을 할수있는 도시가 아닌가 싶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비엔나 공항으로 향한다. 잘츠부르크, 할슈타트 모두 다 좋았지만, 비엔나는 도시가 있어야 할 모든 것이 조화롭게 갖추어진, 유럽 최고의 도시가 아닐까 혼자서 다시 생각해 본다. 
 
 

생크림이 가득올려진 멜란지
지허토르테부터 연어, 치즈가 올라간 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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