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네덜란드

[로테르담] 로테르담 당일 기차여행

Alice1911 2022. 11. 2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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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르담 당일 여행 코스


암스테르담을 다녀오다 우연히 지나가게 된 로테르담. 유럽의 한복판에 이런 빌딩숲의 도시가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해서 꼭 한번 와야겠다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기차로 로테르담 당일 여행을 하게 되었다.

브뤼셀에서는 고속열차를 타면 1시간이지만 표를 끊다보니 저렴한 벨기에 국철 완행열차를 예매했다. 스케줄이 오전 10시출발로 적당하고, 저녁에 로테르담에서 7시 20분 탑승이니 나쁘지 않다. 그러다보니 시간은 총 1시간 50분 가까이 걸린다. 노선은 심플하다. 브뤼셀에서 북쪽으로 계속 달리면 앤트워프를 지나 네덜란드 국경을 넘고, 브레다(Breda) 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 드디어 로테르담이 나온다. 승강장에서 내려오니, 로테르담 역사의 반짝반짝 커다랗고 현대적인 모습에 우선 첫인상이 좋다.

개찰구로 나올 때도 티켓을 한 번 스캔해야 출구가 열리는데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한 것 같다. 역사 앞엔 아주 큰 광장이 펼쳐져 있고 진행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로테르담의 가장 큰 중앙 도로와 이어진다. 시내는 크지 않아서 우선 걸어서 다녀보기로 했다.

로테르담 중앙역



중앙역에서 차이나타운을 지나 계속 걸어가면 바다가 가까워지는 지점에 관광 명소들이 모여 있다. 랜드마크인 큐브 하우스나 마켓홀, 에라스무스 다리가 있는 항구 등이 그곳이다. 하지만 우선 그 전에 배가 고프니 점심부터 먹어야겠다. Soju Bar 라는 매우 직관적인 이름의 한식당을 찾아간다. 이 집은 양념치킨이 맛있다는데, 식사보다는 소주랑 먹는 안주 위주의 멘를 팔고 있다. 찾아가는 길은 대로변에서 한번만 좌회전해서 계속 걸어가는 거라 어렵지 않다.

아담한 거리에 자리한 소주 바는, 낮 12시가 갓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우리 앞에 몇 팀이 기다리고 있어서 인기있는 곳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날씨는 다행히 10° 근처라 따뜻하게 입으면 밖에서 대기하는데도 큰 문제는 없다. 드디어 자리를 잡고 그리워하던 양념치킨을 시키고, 요기도 해야하니 소고기 비빔밥도 시켰다.

오랜만에 한국적인 정서를 느끼며 나온 메뉴들을 흡입하다가 좀 배가 차고서야 주변을 둘러본다. 로컬들 위주의 식당임을 알 수 있다. 재밌게도 일회용 장갑을 하나씩 주고 뼈를 버리는 그릇도 주는데, 브뤼셀에서 홍합 파는 식당에 가면 조개껍데기 버리는 그릇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장갑을 끼고 열심히 닭다리를 뜯는 사람들이 가득. 주문받는 분들은 딱히 한국 유학생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다양한 배경의 아시아 젊은이들이다. '좋은 데이' 소주로 벽면이 장식되어 있는 것도 재밌다.

로테르담 항구


뉴욕을 닮은 건, 항구 옆으로 도시가 형성된 역사에서 유래한 것 같다. 15세기에도 로테르담은 항구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20세기 초반부터는 세계에서 가장 큰 항구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보는 로테르담은 대부분 2차 대전 이후의 모습이라고 한다. 1940년, 43년, 44년 등에 걸친 2차 대전 중의 여러번의 폭격과 그로 인한 화재 등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로테르담은 전후 건축가들이 전쟁으로부터의 회복한 세계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모던하고 단정한 건물들을 지었던 시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단다. 건물의 높이와 규모 면에서 뉴욕과의 직접적 비교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유사하단 느낌이 든건, 이런 계획도시적인 면모를 갖고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유럽의 어느 곳을 가도 1, 2차 세계 대전 때 일부 파괴되었다는 역사는 흔히 내려오는 것이지만, 로테르담처럼 전쟁중 거의 다 부서져 재건된 도시도 꽤 많다. 이렇게 평화로운 현재는 불과 70-80년 전의 전쟁이라는 믿기 어려운 가까운 과거에서 비롯한 것이라, 평화로운 항구의 모습이 한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어느덧 오후 2시경. 걸어서 드디어 우리가 가게 된 큐브 하우스. 항구 방향으로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큐브 하우스는 도로 위에 건축물이 걸쳐져 있는 형태이고, 계단을 타고 입구로 가면 내부에 100미터 정도의 산책로를 따라 재미있는 건물들이 이어져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큐브 하우스 입구


이곳은 엄연히 뮤지엄이지만, 전시품들은 좀 중구난방이라는 평도 있어, 오히려 외관의 건축적인 면을 보는 것이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역방향으로 정육면체의 유닛들이 쏟아질듯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이 가장 큰 특징. 유리와 노란색의 타일로 만들어진 정육면체들이 수십개 맞물려 지어진 모습만으로도 랜드마크가 될 만한 것 같다.

가까이서 본 큐브하우스


마켓홀을 먼저 들르려던 거였지만 굳이 순서를 정할 필요도 없이 큐브하우스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마켓홀은 5-6 층 높이의 건물이 내부가 통으로 뚫려 있고 가장자리에만 엘리베이터아 일부 상가들이 들어서 있어서, 들어서면 시야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높은 천장 아래로 식당과 푸드코트들이 모여 있는데, 해산물부터 버거, 네덜란드식 감자튀김, 아시아 음식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으니 여기서 골라 먹는 재미도 충분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 쪽을 지나오게 되는데 이곳은 대로 양쪽 대류 주변이 모두 유명한 쇼핑몰이다. 이제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거라 그런지 11월 초부터 유럽의 도시들은 모두 크리스마스 장식에 열심인 분위기.

우리가 방문한 날도 미드 시즌 세일을 해서 머플러며 장갑이며 소소한 아이템을 사다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기차 시간까지 좀 시간이 뜰 것 같았는데, 왠걸, 오히려 쇼핑하며 몰 구경을 하다보니, 정말 빠른 걸음으로 역에 가야 기차 시간에 맞추게 생겼다.

유럽에서 기차를 타보면 30분 전에만 역에 도착해도 제대로 된 탑승 구만 찾으면 탑승에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타는 역이 종착역이면 기차가 30분쯤 전에 이미 와 있기 때문에 이코노미(2등석) 티켓이라면 일찍 갈 경우 좋은 좌석도 맡을 수 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유모차를 밀고 로테르담 중앙역으로 걸어 간다. 가는 길에 민트색 로고가 확 눈에 띄는 'Cafe Served'라는 카페에 잠깐 들렀다. 통유리에 녹색 장식이 모던하다. 우리나라에서처럼 고소하고 진한 카페 라떼를 먹고 싶으면 이 동네에선 대부분 플랫 화이트를 주문해야 그 정도 농도의 커피가 나온다. 로테르담이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이렇게 서울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 볼 수 있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감성의 카페들이 아주 많다는 것.

즐거운 마음으로 플랫 화이트를 하나 사 들고 다시 역으로 걸어간다. 사실 로테르담은 트램으로 완벽하게 돌 수 있는 구조이니, 굳이 걸어서 다닐 필요는 없지만 걸어다닌다 해도 편도 1시간 정도에 왠만한 볼거리들을 다 만날 수 있어서 도보 여행으로도 좋은 곳. 특히 날 좋은 봄이나 여름이라면 일부러라도 걸을 필요도 있는 것 같다.

참고로 로테르담에서 에라스무스 대교도 보아야 할 곳 5위 안에 항상 드는데, 부산 광안대교 같이 바다에 걸친 웅장한 다리를 이미 많이 보았다면 로테르담의 운하를 가로지르는 에라스무스 대교는 그렇게까지 인상적이진 않다는게 솔직한 평.

마켓홀 내부

기차에 탑승.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한 기차인데다, 그날 브뤼셀로 가는 가장 마지막 기차여서 그런지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타고 있다. 대학생들이 그룹으로 로테르담 여행을 다녀오는지, 좀 시끄럽긴 했어도 이들이 뿜어내는 싱싱한 에너지가 좋아보이기도 했다. 진한 빨강색의 유럽의 노을을 보며 유럽 서부를 관통하는 기차로 집에 가는길은, 자동차로 갔을 땐 느끼지 못했던 또다른 낭만이 있다. 유럽의 기차는 비행기와 비해서도 과히 싸지 않고 시간도 꽤 걸리지만 이런 낭만만은 정말 최고.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본 로테르담 여행은 생각보다 기대보다 만족스럽고 맛있었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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