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일상

[브뤼셀] 식민지 시대 유산을 아프리카 뮤지엄으로

Alice1911 2022. 10. 3.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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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셀의 초가을은 한국의 늦가을 같아서 벌써 비가 내리면 온도가 11도까지 내려간다. 어두운 산책길, 나갈까 말까 망설였는데 밖으로 나오니 비가 얼굴에 뿌려 더욱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트램 44번이 다니는 터뷰렌 길(Avenue Tervuren)의 산책은 빗속에서도 늘 옳다.

저녁 9시, 해가 많이 짧아진 9월이지만 생각보다는 집들이 밝히고 있는 불빛이 밝았고 가로등 사이로 걸어가는 어스름한 길도 나쁘지 않다.

트램 44번이 다니는 길은 브뤼셀 시내에서 '터뷰렌'이라는 소도시로 나가는 노선이라, 우리집 앞을 지나갈때 쯤엔 주변이 한적해지고, 두 자동차 차선 사이의 넓은 잔디 공간에 트램이 다니게 돠어있어 참 낭만적이다.


숲길 왼편으로 트램길이 보인다

트램길 따라 호수쪽까지 내려가니 호수를 낀 좋은위치에 있는 브라세리에는 금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와글와글, 한적한 주변 풍경과 대조를 이룬다.


44번 트램은 아주 오래된 트램이다. 출입문은 손으로 문에 달린 고무를 눌러야 열리고 의자도 작고 낡았다. 하지만 44번이 지나가는 길은 엄청나다. 호수에서 종점인 아프리카 뮤지엄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설악산 단풍드는 시절의 풍경을 생각나게 할만큼 아름답다.


한여름의 트램길

한국에 있었다면 아마 단풍이나 벚꽃드라이브를 위해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다.

유럽의 비오는 가을 또는 초겨울의 풍경은 항상 약간 쓸쓸하면서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힐링의 기운이 있다. 서울같은 대도시에선 누릴 수 없는 작은 도시의 장점이다.

벨기에 가볼만한 곳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나타나는 아프리카 뮤지엄(Royal museum for Central Africa).

아프리카 뮤지엄의 전경


1865-1909년간 벨기에 국왕이었던 레오폴드 2세가 자신의 사유지로 주장했던 지금의 민주콩고공화국에 대한 박람회를 1897년, 자신의 왕궁중 하나인 이곳에 열기로 한 것이 박물관의 시작이다. 트램 44번길도, 다소 교외인 박람회장에 사람들을 많이 불러모으기 위해서 건설했다고 한다.

콩고 현지인들에 대한 잔혹한 노동력 착취로 악명을 얻은 레오폴드 2세 때문에, 현재 필립 국왕은 얼마전 콩고민주공화국에 가서 많은 지원을 약속하고 오기도했는데,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교외의 박물관에 아주 그런 어두운 역사가 있다는 것도 참 모순이다.

박물관 앞으로 펼쳐진 정원을 지나 좀 더 내려오면 터뷰렌 공원. 길게 뻗은 수로를 따라 자전거길이 펼쳐져있는 곳이다. 여름날의 터뷰렌 공원은 어떤 화려한 공원도 부럽지않을만큼 푸르고 화사하다.

매표소 건물에서 본 뮤지엄 본건물

산책뒤에 뮤지엄의 매표소 건물로 들어왔다. 박물관 자체는 왕궁이었던 곳인만큼 굉장히 오래 되었지만 매표소는 매우 현대적인 건물이다. 표를 사고 지하통로를 통해 본 건물로 이동해서 전시회를 볼 수 있게되어있다. 전시는 문화사적인 것부터 인류학적인 것까지 다양하지만 역시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건 기린과 코끼리 같은 커다란 아프리카 동물들의 실사판 박제.

뮤지엄 내부도 왕궁이었던 곳이라 아름답다


이 공원은 브뤼셀 시내에선 상당히 떨어진 교외지만 시내 중심부에서 메트로를 타면 Montgomery 역에서 트램으로 갈아탈 수 있어서 비교적 쉽게 올 수 있다.

거기에 트램길도, 그 끝에 있는 아프리카 뮤지엄도 터뷰렌 공원도 정말 정취가 있어서, 벨기에 여행 중에 시간이 좀 된다면 꼭 한번 와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곳이다.

유럽의 숨겨진 소도시중에 아름다운 곳이 얼마나 많겠느냐만, 그래도 벨기에 살고 있어서 이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곳을 내 뒤뜰처럼 자주 올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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