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일상

[앤트워프] 중앙역, 구시가 그리고 감자튀김

Alice1911 2022. 11. 6.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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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트워프는 이상하게 겨울에만 가게 되는 것 같다. 흔히 볼 것 없는 관광지라고 해서 벨기에에 와도 브뤼헤, 겐트 정도를 교외 코스로 보지만, 시간이 된다면 현대적인 도시의 면모와 역사적인 유적, 바다를 함께 품고 있는 벨기에 제2의 도시인 앤트워프는 꼭 가봤으면 한다.

네덜란드, 벨기에 근교 여행


기차를 타면 브뤼셀에서 50분이면 도착하니, 근교 여행으로 적당한 거리이다.

앤트워프 지도를 보면, 서쪽 강변 (사실은 항구에서 밀려 들어온 운하지만) 근처로 구시가가 있다. 교역항으로 번성했던 앤트워프 구시가니 바닷가 가까이 있는게 당연하다.
 
브뤼셀로 치면 '그랑 플라스'로 알려진 '그로테 막트(Grote Markt)',와 '플란다스의 개' 배경이 된 성모 마리아 성당 등이 구시가의 핵심이다. 여기서 웅장한 로코코식 건물들이 양옆에 늘어선 Meir 쇼핑거리를 따라 동남쪽으로 꽤 내려오면 앤프워트 중앙역이 있다. 

물론 걸어서 30분 안에 그로테 막트에서 앤트워프 역에 닿을수 있는데, 기차로 온다면 당연히 앤트워프 중앙역에서 구시가를 보는 방향으로 도는 게 좋겠다. 자동차로 온다면 역쪽이나 그랑플라스 쪽 주차장에 차를 넣고 도보로 도심을 한바퀴 볼 수 있을 정도의 규모이다.

 
이번이 세번째 방문이지만, 앤트워프 중앙역은 몇 번을 가봐도 탄성이 나오는 곳이다. 역사는 외부에서 보면 별다를 게 없는데, 내부로 들어선 순간 그 정교하고 화려한 면모에 놀라게 된다. 1905년 완공된 이 역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에 늘 꼽히는 곳이라 한다. 워낙 독특하게 지어져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바로크식, 르네상스식 등 뚜렷하게 양식을 단정지을 수 없다고 한다.
앤트워프 중앙역 바로 앞은 차이나 타운이 있어서, 제대로 된 중국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지난 3월에 갔던 Bai Wei라는 식당은 서울에서 잘한다는 중식당의 맛에 매우 근접해 있었는데, 아쉽게도 일요일엔 문을 닫아 이번엔 가보지 못했다. 중식당이 꽤 많지만 이 집은 구글 4.4의 평점에 우리가 일찍 도착한 이후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와 꽉 차는 모습을 보고, 검증된 식당임을 확인했던 것 같다.
벨기에 제2의 도시인 앤트워프는 네덜란드어를 쓰는 플랑드르 지역에 있다. 소득이 높고 다이아몬드 가공 및 교역 등 산업이 꽤 발달해서 도시의 전체적인 느낌이 훨씬 더 모던하다. 벨기에에 있는 패션 브랜드들의 플래그십 매장도 브뤼셀에 하나, 앤트워프에 하나, 이런 식이다. 여기서 굳이 하나를 더 꼽자면 부유층들의 여름 하우스가 많이 있는 크노케-헤이스트 쯤이 되겠다.

앤트워프 중앙역 천장

 
앤트워프 차이나타운

플랑드르 지역이 대개 그렇듯이 식당과 펍, 카페 들도 북유럽풍의 모던한 곳들이 많다.  흔히 벨기에가 프랑스랑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북유럽이랑 비슷한 정서와 건축물, 분위기이다. 
플랑드르 지역에 오면 있는 또 하나의 소소한 즐거움은 감자튀김. 감자튀김이란 게 사실 거기서 거기지만, 플랑드르 쪽 감자튀김 가게들의 특징은, 커다랗고 길게 튀긴 감자를 10가지도 넘는 소스 중에 골라서 먹는다는 것. 그리고 소스가 유료라는 것이다. 이곳에 와서 새로 알게된 사무라이 소스는 약간 매콤하고도 크리미 해서 자주 먹는데, 아주 기본적인 케첩이나 머스타드도 고를 수 있다.
맥도날드 감자튀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튼실한 크기에 신선한 맛이라, 관광지에서는 소스가 잔뜩 뿌려진 감자튀김 한 봉지를 들고 식사겸 때우며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만큼 시내 여기저기에 감자튀김만 전문으로 하는 가게들이 많다. 줄이 어느 정도 있으면 맛은 거의 유사하니까 고민하지 않고 들어가도 된다.

앤트워프 중앙역

이곳은 10월이 넘어가면서 급격히 날이 짧아지고 흐리고 비오는날이 많은데, 역설적으로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감자튀김 집 앞에서 줄을 선다. 우비와 장화를 제대로 갖춰신고 말이다.
춥지 말라고 공중에서 히터도 틀어주니, 꽤 기다릴만하다. 비오는 와중 가게 앞 공간이 넓을 리 없는데도, 다닥다닥 좁게 붙은 자리에 앉아 위에서 쬐는 히터의 열에 의존해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감자튀김을 신나게 먹으며 수다를 떤다.
 
아마 내가 기억하는 벨기에 플랑드르의 모습에는 청회색의 야외 풍경과 따뜻한 노랑, 오렌지 빛깔의 감자튀김 가게의 대비, 그리고 그속에도 날씨에 개의치 않고 일상을 즐기는 벨기에 사람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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