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터키

[알라차트] 그리스적인 또는 유럽적인 역사가 깃든 에게해 여행지

Alice1911 2023. 2. 23.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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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차트(Alacati)는 터키의 에게해에 면한 서남단의 도시 이즈미르(Izmir)에서 881번 국도를 타고 터키인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체시메(Cesme)로 가는 길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체시메 반도의 아래쪽 해안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파인 만(bay)에 위치해 있어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그리스 스타일의 석조건물과 구불구불 좁은 길,수심이 얕은 해안이 길게 이어져 서핑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점 정도가 알라차트에 대해 알려진 사실. 

 
하지만, 오히려 이즈미르라는 터키에서 세번째로 큰 대도시보다, 여름마다 청춘들이 모여 불야성을 이룬다는 체시메보다, 마음을 깊이 끌어당긴 것은 오히려 바로 이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자동차로 국도를 따라 알라차트 마을의 중심(Merkezi)로 들어가면, 한 바퀴 돌아보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는 아주 작은 마을이 나온다.
 

알라차트 마을 곳곳


그리스 스타일의 석조 건물들은 확실히 나무로 프레임을 만든 오스만 전통가옥들과는 다른 모양새다. 석조 건물이라 하지만 층마다 낸 창가에는 붉은색, 노란색, 라벤더색, 주황색의 꽃화분들이 올려져 있고, 집과 집 사이의 3미터 될까말까 한 좁은 골목길은 가로 세로 10cn정도의 네모난 돌들로 촘촘히 채워 놓았다. 
 
이 좁은 골목길에는 까페와 식당, 옷가게들이 즐비한데, 사람들은 건물 바로 밖에 낮은 등받이 없는 의자를 내어 놓고 차를 마시거나 지중해 스타일의 문어 샐러드나 올리브유에 구운 생선 요리를 먹으며 한가한 오후를 보낸다.
 
10월말 어느날, 이미 터키 내륙은 아침 기온이 10도까지 내려간 내륙의 날씨와 달리,아침에 걸친 스웨터를 벗게 만드는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연중 비오는 날이 30일이 되지 않는다는 에게해의 축복이 내린 곳이 바로 알라차트인 것 같다. 
 

터키 에게해 여행, 이즈미르, 알라차트

 
아기자기한 알라차트의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문득 이상한 점이 느껴진다. 골목을 따라 들어서있는 작은 커피 가게는 터키 커피를 파는 묵직한 오스만식 인테리어가 아니었다. 나무 창틀을 라벤더색으로 칠해 요정의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살린 것은 관광지이니 그렇다 쳐도, 메뉴 또한 대도시에서 보는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한 커피인 게 신기하다.
 
터키의 많은 식당들이 케밥을 파는 ‘로칸타스(Locantasi)’인데 비해, 이 곳은  그리스식 생선파는 식당이나 유럽식 가정식을 파는 곳이 많다. 다른 터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전경이다. 심지어 케밥을 파는 터키 식당도 ‘Turkish cuisine’이라는 명패를 군더더기없는 활자체로 세련되게 새겨놓았다.
 
오히려 남부 유럽의 작은 관광지 마을들과 더 비슷한 모습니다. 외국인이 많아서 그렇게 꾸며놓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있지만, 이스탄불과 같은 관광객이 차고 넘치는 도시도 고전적인 터키 도시의 모습을 갖고 있는데 이곳은 왜 이럴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히려 알라차트가 속한 이즈미르 주의 중심도시인 이즈미르 시내 한복판도 지극히 터키 도시 같은 구조와 외관을 갖고 있다. 
 

알라차트 마을 곳곳


도시가 지금 현재의 모습을 띠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면, 역시 알라차트의 역사를 짚어볼 수 밖에 없겠다.
 
알라차트를 포함한 체시메 반도는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전반에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이 곳에서 비교적 가까운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이 함락된 1453년 보다 좀 더 이른 시기였을 것이다.
 
그런데 알라차트라는 마을이 생긴 건 대략 17세기에 그리스 인들에 의해서라고 한다. 당시 바로 바다 건너에 있는 그리스와 문화적 교류가 많았던 알라차트 주민들은종교적으로도 그리스 정교회를 많이 믿었고, 오스만 제국도 이들에게 이슬람교를 강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19새기 말 발칸 전쟁에서 패한 그리스계 터키인들까지 체시메로 넘어와 산 덕에이 곳은19세기 말까지도 터키인들은 전체 인구의 10% 정도밖에 되지 않고 그리스계가 주요 구성원이었다는 거다.

 
1923년에 현대 터키 국경이 정해질 때 터키와 그리스는 강제로 상대방의 영토에 살고 있던 자국민들을 교환하게 되는데, 언어나 민족(ethnicity)이 아닌종교를 기준으로 교환했던 탓에 민족적으로는 그리스계인 사람들도 오랜 세월 이곳에 살며 이슬람교를 믿게 되어, 그대로 남도록 허용 되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알라차트는 연원부터도 그리스 문화권이었고, 근대사에서도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적게 받았다는 건데, 그 결과 이 마을의 모습은 그리스, 좀 더 넓게 말하면 남동부 유럽의 지중해 소도시의 모습과 흡사한 형태로 조성되고 유지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숙소엔 아직도 수영장에 물이 있다


바다만 건너면 그리스 영토인 이곳은 그래서, 지금도 터키의 어떤 도시라기보다는 에게해와 넓게 보면 지중해의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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