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터키

[체시메] 터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게해 휴양지

Alice1911 2023. 2. 2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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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알라차트를 좀 구경한 뒤, 터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휴양지 '체시메'로 넘어가기로 한 날이다.

알라차트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주말이라 큰 장터가 섰다. 직접 농사지은 야채와 과일, 수제 간식을 들고 나와 판매하는 주말 장터는 터키에서는 드문 풍경이 아니지만 알라차트에서 본 주말 장터는 터키에서 보았던 어떤 장 보다도 큰 규모를 자랑했다.


하얀 천막 아래 햇빛을 받은 토마도, 복숭아, 사과, 무화과, 수박, 호박, 가지, 당근, 박, 고추, 대추 등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원색의 농산물들이 신선함을 자랑한다. 집에서 담근 오디잼, 당근잼, 수박잼들이 리본을 단 유리용기에 담겨 탐스럽게 놓여있다. 손으로 만든 목걸이랑 팔찌 같은 수공예품에, 알라차트의 풍경을 담은 마그넷과 액자까지 장터에 나올 수 있는 모든 물건은 다 나왔다고 해도 될 것 같다.

마침 생선 집에서는 작은 경매가 벌어지는데, 넓은 테이블 비닐보 위에 아직도 아가미를 움직이는 농어나 우럭 같은 지중해 생선들을 사이에 두고, 손가락으로 수를 세고 눈짓으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하는 노련한 경매장이들이 열심히 경합을 붙이는 중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경매의 중간중간 누군가는 생선 두 세 마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웃음을 띠며 경매판을 떠난다. 그 와중에 혹시 작은 생선이라도 하나 테이블에서 떨어질까 옆에 지키고 서 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너무 재미있다.


알이 한국에서 보던 것의 두 배는 되보이는 대추를 좀 사려하니 한 가득 무게도 재지 않고 담아 준다. 사과만큼 달지는 않지만 달큰한 맛에 사과보다 더 아삭거려 끝없이 집어 먹게 만드는 터키 대추라니. 장이 선 골목 뒤로는 조그만 수영장과 아담한 뜰, 라벤터 색, 연두색으로 나무 대문을 칠하고 꽃화분이 반기는2-3층 규모의 부티크 호텔들이 곳곳에 서 있다.

안탈리아나 보드룸이 외국인들에게 잘 알려진 대규모 리조트와 호텔 중심이라면 체시메나 알라차트는 이런 소규모 부티크 호텔들 중심이라고 한다. 호텔에서 며칠 묵으며 수영하고 장터에서 과일을 사다먹으며 해변으로 걸어가다니는 느린 호흡의 휴가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누리는 호사인 것이다.

체시메로 넘어가기 전, 바닷가로 이동해서 서핑으로 유명하다는 해변을 보기로 했다. 서핑이라고 하면 왠지 커다란 파도 위를 다이나믹하게 오가는 서핑 선수들의 멋진 모습이 떠오르지만 서핑은 사실 파도보다는 바람이 많이 부는 것이 더 중요한 입지조건이라고 한다.
알라차트 해변은 만으로 깊이 들어와 있어 파도는 잔잔한 편이지만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해변에서 떨어진 바다 한복판의 파도는 서핑에 적절한 수준이라고 한다.

10월이라 여름 성수기가 지난 때지만 멀리 바다 위로 윈드 서핑 삼매경인 몇몇 사람들이 보인다. 보기에는 매달린 돛을 잡고 서핑보드 위에 서 있기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아직도 따뜻한 10월의 바다를 즐기려는 뒤늦은 해수욕 손님들이 파라솔 밑에 해를 피하며 책을 읽고 엎드려 낮잠을 즐긴다. 화려하고 핫한 휴양지의 모습은 아니지만, 눈 앞에 서퍼들이 노니는 바다가 있고 주변에 아무도 나를 신경쓰는 사람이 없는 조용한 해변가. 알라차트 해변은 그냥 머무르기만 해도 평화로움이 밀려오는 곳이었다.

터키 체시메 여행


알라차트에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머문 뒤, 체시메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직항으로 5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이즈미르 공항에서 공항버스로 이즈미르 시내, 그리고 체시메로 올 수 있다.

외국 여행자들보다 터키 현지 사람들이 더 사랑하는 휴양지 체시메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궁금했었는데, ‘여름집’이 그 답이었다. 이즈미르주에는 에게해라는 매력적인 자산을 가진 덕에 여름에 1-2달 살기 위해 친척이나 친구들과 함께 투자해서 마련한 여름 별장들이 많다고 한다.

여름 별장이라고 해서 전부 으리으리한 외관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1-2층의 소박한 집이라 해도, 걸어서 또는 차로 10분 정도 거리에 바다를 접하고 있기만 하다면 이미 여름집으로는 족해서 평범한 사람들도 친척들이나 지인들과 공동으로 구매하기도 한단다. 비수기에는 몇 달에 한번 방문해 청소도 하고 다음 여름을 대비해 관리한다고 한다.

체시메 해변


체시메 해변에 바로 접한 여름집들은, 1층, 2층 할 것 없이 통유리로 바다 쪽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양쪽으로 밀어서 열 수 있게 되어 있고, 유리 바깥의 발코니에는 의자 여럿과 낮은 테이블을 두고 쉴 수 있는 구조다. 특히 1층에서는 발코니 바깥으로 나무문을 열기만 하면 바로 고운모래 바닥을 밟을 수 있다. 체시메 바다는 해변에서 20-30미터를 걸어나가도 어른 키와 비슷할 정도로 수심이 얕아서 해수욕하기에 특히 좋은데, 한참을 놀다가 발만 대강 털고 다시 여름집으로 들어갈 수 있다니 너무 좋을 것 같다.  

흐린 날이라 햇볕에 부서지는 에메랄드 색 바다는 한 겹 어두운 색으로 보였지만, 너무 어깨에 힘주지 않은 편안한 부띠끄 호텔들과 한 여름의 열기를 떠올릴 수 있게 하는 여름집만으로도 이미 체시메는 매력적으로 보인다.  

체시메 시내는 알라차트 시내처럼 아기자기 골목길이 이어지며 주택들이 들어선 외관을 갖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의식적으로 많이 꾸며진 정돈된 마을의 느낌이 더 강하다. 영국, 미국 국기를 단 요트들이 하얗고 세련된 모습을 자랑하며 정박해 있는 세련된 항구가 있고, 관광객들이 몰리는 시즌을 겨냥하여 하얀 벽으로 칠하고 알록달록 꽃나무와 페인트로 꾸민 나지막한 집들에 식당과 옷가게, 까페들이 정돈된 모습으로 늘어서 있다.

체시메의 항구


명성에 걸맞는 휴양지의 북적임을 느낄 수 있는 체시메도, 체시메 가는 길에 행운처럼 만난 알라차트도, 내륙의 터키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닌, 또다른 터키의 얼굴이다. 역시 터키는, 하나로 요약할 수 없는 천의 얼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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